탄핵국면에서 드러나는 각 정치세력들의 정치적-계급적 본색!
결국, 6월항쟁의 정치적 성과를 김대중에 헌납하려 했던 비판적 지지경향과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진했던 독자후보진영 간의 대립과 투쟁이 형태를 달리하여 2004년에서 재생되고 있다.
시민운동에 있건, 민주노총에 있건, 이들의 목소리는 거칠 것이 없다. 진퇴양난에 빠진 민주노동당은 암울한 총선 전망 앞에 여전히 자신을 합리화할 온갖 구실을 찾기에 급급하다. 어떤 궤변과 논리로 자신을 무장하던, 현재의 탄핵국면은 주도할 수 있는 세력은 노무현 외에는 아무도 없다!
불가능한 대중전취의 논리로 요구의 수위를 낮추는 것은 낯 뜨거운 자기기만일 뿐이다. 문제는 계급적 관점에선 정치적 결단과 용기이다!
탄핵국면을 돌파할 "비장의 카드" 같은 것은 없다!
먼저, 현국면을 명쾌하게 한 칼로 돌파할 수 있는 마술 같은 구호는 없다. 오직 특정한 계급적-정치적 관점에서의 요구와 주장만 있을 뿐이다. 물론, 명쾌한 답은 있지만, 별볼일 없는 주체역량 때문에 공허하게 들릴 것이 분명하니까, 제기되지 않을 뿐이다. 아니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바로 혁명이라는 단어 자체를!
현국면을 바라볼 때, 문제의 핵심은 자신의 관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탄핵사태의 성격은 분명할 것이다. "탄핵무효 민주수호"와는 다른 정치적 대안을 찾고자 하는 많은 주장의 뿌리는 기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쓸데 없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걱정하지 말자. 노동자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시민이 아니다. 시민이라는 허위의식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비시민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촛불이 던지는 돌도 과감히 맞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갖게 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로 비롯된 코미디!
국민소환과 국민발의, 좋은 요구다! 노무현 지지로 왜곡되지 않는 대중적 슬로건으로서 자치의 한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민중주권으로의 민주주의가 자치와 등치될 수 없다는 것 역시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요구는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 요구다. 왠만한 상황이면 가능하다. 이미 열린 우리당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이여!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국민발의, 국민투표, 국민소환 등 직접민주주의의 세가지 형태로 제시되어 있고, 실제로 이런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는 스위스라고 한다. 스위스는 어떤 나라인가? 잘은 모르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잘 보장된 선진국이고, 열강의 빈틈에서 살아남은 틈새국가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국민소환은 그야말로 철저히 체제내적인 제도이고, 스위스의 주인이 노동자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러나 이 요구가 현국면을 돌파할 요구일까? 소환당하기 전에 점잖게 사퇴하면 끝이다. 일본의 정치인들처럼 아쌀하게 자살하면 끝이다. 욕한 사람만 머쓱하게 되고... 결과는 뻔한 것이다.
국민소환권이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이지만, 이 권리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포장할 수는 있을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적 노무현을 도와주기 싫어서, 내민 새로운 카드가 부르주아 정치를 멋있게 포장하는 장식물이라니!
1987년의 망령을 넘어서!
이번 탄핵국면은 한편에서 대중적 분노의 폭발에 기초하여 새로운 대중투쟁의 동학을 보여주었지만, 결국은 신자유주의 개혁체제의 안정적 정착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여년간 이 땅의 노동자-민중운동이 움켜쥐었던 정치세력화의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4.15 총선은 확인사살의 과정일 뿐이다.
한줌의 좌파가 결코 주도할 수 없는 현국면에 대한 명쾌한 계급적 정치선언이 백마디의 논리보다 중요하다. 보다 긴 안목으로 정치세력화와 사회변혁의 전망에 대한 묵묵한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좌파의 눈과 귀가 향할 곳은 광화문이 아니라, 분노와 절망을 계급적 본능으로 느끼는 노동자 계급이다. 그들이 광화문을 어슬렁거리던, 현장에 있던.
좌파는 1987년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은 1917년 2월이 아니라, 10월에 이르는 그 도정의 어딘가이다. 우리에게 비장의 카드가 없어도 우리는 전진할 것이고, 곧 우리가 찾던 그 지도력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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